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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의 유교

고구려 : 고구려는 중앙에 태학을 설립했습니다. 이 때, 태학을 설립한 왕은 이전에 배웠듯이 소수림왕입니다. 

지방에는 경당을 설치했습니다. 설치한 시기는 장수왕이고, 경당에서는 문학뿐만 아니라 무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백제 : 의학박사, 도박사 등등 직위가 존재했으며, 백제의 가장 훌륭한 박사는 왕인박사와 아직기입니다. 왕인박사는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으며, 아직기는 일본 황태자의 스승이었습니다.  

* 사택지적비란? 

사택지적비

의자왕 때 세워진 비석으로  늙음에 대한 회의감과 불교로 귀의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비석입니다.

 

신라 : 신라 때는 임신서기석과 제일 유명한 '화랑도'가 있겠습니다. 

화랑도야 뭐 많이 유명하니 스킵하고 임신서기석에 대한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임신서기석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을 새긴 비석으로 신라의 청년들의 유교도덕의 실천상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 : 신문왕 때 세워진 '국학'이라는 교육기관이 있었습니다. 

또, 중요한 유교덕목으로는 6두품 출신의 설총이 지은 '화왕계'입니다. 화왕계는 설화로 아첨을 일삼는 미인과 임금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백두옹간의 이야기입니다. 이를 통해 설총은 신문왕에게 올바른 왕이 되도록 일깨움을 주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화랑세기> <고승전> <한산기> 등등 화랑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김대문도 진흥왕때부터 문무왕때까지의 화랑정신을 보여줌으로써, 이 시대의 신라는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사상을 가졌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밖에 교육에 대한 개정은 더 이루어졌습니다.  대표적인게 통일신라의 원성왕 때 시행된 '독서삼품과'인데 책을 읽고 시험을 보게하는 제도였습니다. 

 

통일신라 때 등장한 유명한 유교학자로는 최치원이 있겠습니다. 시무 10여조를 작성한 최치원은 중국의 SAT라고 볼 수 있는 빈공과를 수석으로 통과하였습니다. 그 빈공과 시험에서 써내려 간 격문이 바로 '토황소격문'입니다. 

 

▶삼국시대의 역사서에 대하여

 

고구려 : 영양왕 때의 학자 이문진이 만든 신집5권은  수나라와 전쟁을 한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에 대해 집필한 도서입니다. 

 

백제 : <서기> 근초고왕 때 고흥이 만든 책입니다. 

 

신라 : <국사> 진흥왕 때 거칠부가 만든 책입니다.

 

▶ 삼국시대의 도교와 불교사상에 대하여

 

고구려 : 고구려의 도교사상으로는 사신도를 엿볼 수 있죠. 신선과 무위자연에 대한 그림이 대표적이며, 사신도의 경우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에 대한 그림을 동서남북 형태로 나타내었습니다.

고구려의 불교는 소수림왕 때, 불교를 수용함으로써 공인된 종교가 되었습니다.

 

백제 : 백제의 도교사상으로는 산수무늬 벽돌과 금동대향로가 있습니다.

백제 산수무늬벽돌

새삼 느끼는건데, 어떻게 돌판에 저런 그림을 새겨넣을 수 있었을까요. 진짜 옛것의 기술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백제의 불교수용으로는 침류왕이 중국 동진에서 받아들인 것을 시작으로 합니다.

 

신라 : 법흥왕 시절 때, 이차돈의 희생을 통해 불교를 수용하게 됩니다. 이차돈의 희생일화는 꽤나 유명하죠? 이차돈이 처형당할 때, 피대신 우유가 뿜어져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통일신라 : 제일 중요합니다. 통일신라 때는 도교사상은 많이 퇴색되었구요. 불교에 대해 문제낼 것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먼저 원효대사입니다. 원효대사는 무애가와 아미타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를 전파했습니다. 아미타 신앙이란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가 사후에 극락세계로 갈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다음으로는 원융회통사상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는 서로 상충되는 의견이 존재할 때, 융섭의 이념에 따라 하나로 귀속된다는 이론입니다. 걍 쉽게말해서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화해하고 부처님의 법안에서 살아가라~ 이 말이 되겠습니다.

또한, 원효대사는 문무왕시절에 책을 집필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게 <십문화쟁론>,<대승기신론>이 되겠습니다.

 

다음은 의상대사입니다. 관세음신앙과 화엄종에 대해 이야기를 한 불교자입니다. 화엄종은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온 뒤, 통일신라 시대에서 이를 전파하고자 한 내용입니다.

 

다음은 혜초입니다. 혜초의 업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왕오천축국적이 되겠습니다. 이는 고대 인도의 5천축국을 방문하고 이에 대한 느낀점을 쓴 여행기가 되겠습니다.

 

▶ 삼국시대의 불상과 불탑

고구려 : 고구려의 불상으로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금등연가7년명 여래입상이 있겠습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불상과 이름을 연관지어 외우는 방법은 불상의 자세를 주목하면 됩니다. '반가'의 경우는 위 그림처럼 한쪽 다리는 넓적다리에 걸쳐있고, 다른 쪽 다리만 내려앉은 모습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러면 금등연가7년명여래입상의 경우는 뭘까요?

'입상' 이라는 것은 서있는 자세를 말합니다. 즉, 고구려의 불상 중에서 서있는 모습이 나오면 금등연가7년명 여래입상이라 유추할 수 있겠죠?

금등연가 7년명 여래입상

위와 같은 모습입니다.

고구려의 경우는 불탑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있지 않으므로 패스하겠습니다.

 

백제 : 백제의 불상은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삼존상이 있겠습니다. 추가적으로 백제 역시 고구려의 불상과 같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존재합니다. 이는 신라에도 있는데요.  삼국시대를 통틀어 반가사유상은 널리 퍼져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제외한 각각의 다른 불상들의 사진을 보면서 외우도록 합시다.

서산 용현리 마애 여래 삼존상

백제에는 불탑도 여러개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익산미륵사지 석탑 (백제 무왕 때 건설)과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이 있겠습니다.

 

신라 : 경주배동 석조여래 삼존입상,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경주 배동 석조여래 삼존입상

신라의 불탑에서 눈여겨 봐야할 것은 황룡사9층 목탑입니다. 이는 선덕여왕 때 지어졌는데 나중에 원나라(몽골)의 침입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경주 분황사 석탑이 있습니다.

 

통일신라 : 석굴암 본존불이 대표적인 불상입니다. 다들 수학여행가면서 많이 봤죠?

통일신라의 불탑은 꽤 중요합니다. 먼저 경주 불국사 3층석탑 (석가탑 혹은 무영탑이라 불림)이 있는데요. 여기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게 됩니다.

경주 불국사 3층석탑 (석가탑, 무영탑)

 그 밖에도 감은사지 3층석탑, 다보탑 등등이 있는데요. 여기까지는 통일신라의 전기에 건설된 애들입니다.

통일신라 말기에는 진전사지 3층 석탑이 있었고, 특별히 승탑이라는 것도 존재했습니다. 화순 쌍봉사가 대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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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열왕(김춘추)

- 신라의 선덕여왕이 백제 의자왕으로부터 공격을 받자, 고구려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김춘추를 보냈습니다.

김춘추는 고구려의 연개소문을 만났으나  도움을 거절당하고  당나라와 연합하게 됩니다. 

- 그 후,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차례 멸망시킵니다.  

 

무열왕 김춘추는 최초의 진골출신 왕입니다. 

 

▶ 문무왕&신문왕

- 나당전쟁에서 승리한 후,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입니다. 문무왕은 왕권 강화를 위해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상수리 제도' 라는 것인데 이는 힘있는 귀족들을 중앙으로 데려와 직접 본인의 지휘하에 있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신문왕을 보겠습니다. 신문왕은 아마 통일신라 중에서 가장 문제낼 것이 많은 왕일 것입니다.

- 첫번째, 집사부를 중용하고 화백회의의 힘을 무너뜨렸습니다. 집사부는 왕을 보좌하는 자들입니다. 화백회의의 힘이 약해졌다는 것은 상대등의 권한이 약해졌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신문왕의 왕권 강화를 위한 행동은 더 있습니다. 관리들에게 주던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녹읍은 각각의 귀족들이 가지는 땅과 노비였는데 이들은 개개인의 소유재산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냥 월급쟁이로 전락해버리게 됩니다. 

 

- 김흠돌의 난이 일어납니다. 이 때, 신문왕은 왕권 강화를 위해 난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진골귀족들까지 척살해버립니다. 

 

▶ 경덕왕

- 통일 신라 후기의 왕입니다. 녹읍을 부활했습니다. 즉, 다른 말로  귀족의 힘이 다시 올라가고 왕의 힘이 내려가게 됩니다. 

- 김헌창의 난에 의해 다시 귀족들이 판을 치기 시작합니다. 

 

* Tip. 통일 신라 후기때부터는 왕권이 약화되면서 '호족'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각각의 지방에서 힘있는 귀족들을 말합니다. 호족은 크게 1세대 호족과 2세대 호족으로 나뉘는데  1세대 호족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해상 장보고'입니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들을 때려잡고 중국과 일본과 활발한 무역을 하는 활동을 보여주었습니다. 

 

호족 2세대를 알아봅시다.

- 호족 2세대는 바로 후삼국시대를 열었던  후고구려의 궁예 / 후백제의 견훤입니다. 이들로 인해 후삼국 시대가 시작됩니다.  

견훤은 후백제를 완산주에서 건국했고  궁예는 후고구려를 송악에서 건국합니다.  궁예는 후에 왕건에게 죽고, 왕건과 견훤은 전투를 시작하게 됩니다. 

 

1. 공산 전투 : 견훤과 왕건의 전투고  이 전투는 견훤이 승리합니다. 그리고 왕건은 신숭겸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2. 고창 전투 : 견훤과 왕건의 2번째 전투입니다. 여기서는 왕건이 승리합니다. 

3. 일리천 전투 : 견훤은 후계자 문제로 자신의 아들인 신검에게 배척당합니다. 이에 견훤은 왕건을 찾아가게 되고, 왕건과 함께 자신이 세운 후백제를 공격하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게된 왕건은  후백제를 몰락시킵니다.

 

후에,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왕건에게 항복하고  고려시대가 시작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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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혁거세

- 사로국을 세웠습니다. 이 당시에는 왕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다른 성씨들이 돌려가며 왕을 했었습니다.

박혁거세 다음으로는 석탈해. 석탈해 다음으로는 김알지였습니다. 

- 왕이라는 이름도 없었습니다. 박혁거세는 거서간의 칭호를 가졌고, 석탈해는 차차웅. 김알지는 이사금이었습니다.

 

▶ 내물마립간 (내물왕)

-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왜를 격퇴해주러 왔습니다.

- 김씨 세습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 눌지(왕)

- 5세기 때 장수왕이 쳐들어오자 백제의 소지왕과 나제 동맹을 결성합니다.

 

▶ 지증왕 (개인적으로 지증왕 쪽에서 문제내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진흥&법흥은 워낙 유명하니 패스)

- 600년에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울릉도)을 정벌합니다.

-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나라 이름을 신라라고 정합니다.

- 우경(소를 이용한 농사)을 실시했고, 동시에 시장을 감독하는 일인 '동시전'도 시작합니다.

- 순장 폐지

 

▶ 법흥왕

- 6세기 중반때, 연호를 제정합니다. 연호는 '건원'  율령도 함께 제정합니다.

- 병부를 설립합니다. (=국방부)

- 골품제를 정비하고 이 때부터 상대등의 개념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 불교를 수용합니다. (이차돈의 희생)

- 금관가야를 정복합니다.

 

▶ 진흥왕

- 관산성 전투에서 승리하여 백제 성왕을 전사시킵니다. 한강을 장악합니다.

- 단양적성비와 북한산 순수비를 세웁니다. 

- 화랑도를 개편합니다.

- 대가야를 정복합니다.

 

Tip. 순수비의 뜻 : 점령지역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적성비의 뜻 :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단양적성비의 경우는 왕권 강화의 목적도 함께 존재하구요. 북한산 순수비는 한강 유역을 차지했을 때 세운 것입니다. 

 

▶ 7세기 나당연합 시절

-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나당전쟁으로 이어집니다.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에서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삼국통일을 이뤄냅니다. 

 

당시, 나당연합일 때는 김춘추(무열왕) / 나당전쟁때는 김춘추의 아들인 문무왕이 있었습니다.

 

 

복습갑시다. [Test]

1. 지증왕의 업적 중에 틀린것은?

a) 왕의 칭호 사용  b) 우경 장려  c) 순장 폐지  d) 불교 수용 e) 동시전 설치

 

2. 법흥왕과 진흥왕의 업적을 구분지어 말해보세요.

법흥왕은 ____ 가야 정복,  진흥왕은 ____ 가야 정복

법흥왕은 _____ 수용 , ______ 정비 (상대등의 등장)

진흥왕은 백제의 성왕과 _______ 전투를 함.

진흥왕은 한강 유역을 차지했을 때 ______________ 세움.  그리고 왕권 강화 목적으로 _______________ 도 세움.

 

3.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당나라를 상대로 승리한 두 전투의 이름은?

______________ , 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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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조

- 온조는 주몽의 아들입니다. 주몽으로부터 떨어져나와 한강 유역에 터를 잡고 백제를 건국했습니다.

 

▶ 고이왕

- 율령을 제정했습니다. 관등관복을 통해 관직에 등용된 자들에 대해 복세를 걷어갔습니다. (왕권 강화의 움직임)

- 마한의 목지국을 백제로 병합시켰습니다.

 

▶ 근초고왕

- 4세기. 백제의 전성기를 이끈 왕입니다. 고구려를 침략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케했습니다. 

- 왜와 교류를 자주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백제의 유물인 칠지도가 생겼습니다.

- 마한지역을 완전히 정벌했습니다.

 

▶ 침류왕

- 중국(동진)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합니다.

 

▶ 비유왕

- 신라의 눌지왕과 나제동맹을 결성하여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하고자 했습니다.

 

*** 이 사이에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은 죽게 됩니다. 백제는 웅진으로 천도하게 됩니다. 

 

▶ 동성왕

- 신라의 소지왕과 나제동맹을 더욱 굳건히 합니다.

 

▶ 무령왕

- 22담로를 파견합니다. (왕권 강화의 목적)

- 중국과 일본이랑 교류를 열심히합니다.

- 무령왕이 죽고난 뒤, 무령왕릉이 지어지게 되는데 이는 벽돌무덤의 형태입니다. 조만간 문화파트에서 다루겠습니다.

 

▶ 성왕

- 백제 제2의 전성기를 꿈꾸며 사비로 천도합니다. 

- 행정구역을 5부5방 체제로 바꿉니다.

-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와 싸우다 죽습니다. (이 당시 신라의 왕은 진흥왕)

 

▶ 의자왕

- 642년 대야성전투를 통해 신라를 압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의 연개소문에게 찾아간 것입니다.

- 나당연합군은 백제를 타깃으로 합니다.

- 계백장군의 황산벌 전투를 마지막으로 백제는 멸망하게 됩니다. (660년)

 

▶ 백제 부흥 운동

- 흑치상지, 도침, 복선이 이끌었습니다. 고구려 부흥 운동과 다른 점은 일본이 이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는 겁니다.

물론 실패합니다 ㅋ

 

 

복습 타임입니다. [Test]

1) 율령을 제정한 백제의 왕은? __________ 

2) 근초고왕의 업적을 말하세요. _______________________ 

3) 무령왕은 왕권 강화를 위해 무엇을 했나요? 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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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란?

- 가야는 크게 대가야와 금관가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달리 국가로 발전하진 못했고

연맹왕국 단계에 그친 나라입니다. 

 

▶ 가야의 경제

- 가야는 옛날에 변한이 있던 자리로  철이 많이 유명했습니다. 이를 가야는 '덩이쇠' 라는 철을 수출함으로써 경제력을 키워왔는데 특히 왜랑 교류가 많았었습니다. 

 

▶ 가야의 정치

- 3세기 쯤에는 금관가야가 연맹국중에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 가야를 이끄는 역할을 했었습니다.

가야를 세운 사람은 김수로입니다. 

 

다만, 광개토대왕의 침략에 의해 금관가야는 쇠퇴하게 되고 5세기부터는 대가야가 연맹국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Tip. 금관가야는 김해 대성동에 위치했었고, 대가야는 고령 지산동에 위치합니다. 

 

▶ 가야의 멸망

- 금관가야는 6세기에 신라의 법흥왕에 의해 멸망합니다.

- 대갸야는 6세기에 신라의 진흥왕에 의해 멸망합니다. 

 

 

고구려랑 함께 복습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1) 고구려 소수림왕이 한 업적을 말해보세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옆에 드래그하면 답 보여요! (태학설립, 율령제정, 불교수용)

2) 낙랑군을 축출한 고구려의 왕은? __________ 옆에 드래그하면 답 보여요! (미천왕)

3) 장수왕의 업적을 말해보세요. ____________________ 옆에 드래그하면 답 보여요! (남진 정책, 중국과 교류하며 균형외교 정책을 펼침, 평양 천도, 백제의 한성을 함락시키고 개로왕 Kill, 충주 고구려비를 세움)

4) 광개토대왕의 금관가야 침략으로 금관가야는 멸망했다. (O/X)

5) 천리장성은 언제 축조했는지 짧게 답변하기. ________________ 옆에 드래그하면 답 보여요! (살수대첩과 당나라 침략 그 사이에 축조함.)

6) 고국천왕이 한 업적을 말해보세요. 옆에 드래그하면 답 보여요! (진대법, 5부족연맹체제에서 행정5부로 개편, 부자 세습)

7) 대가야와 금관가야는 어디에 위치해있었나요? 

금관가야는 _________ (김해 대성동)

대가야는 ________ (고령 지산동)

 

8) 대가야와 금관가야는 각각 무슨 왕에게 멸망했나요?

대가야 : _________ (진흥왕)

금관가야 : ________ (법흥왕)

 

9) 가야는 ______ 이 유명했고 왜와 자주 교류했었다. (덩이쇠)

 

 

모바일 분들은 배려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포스팅한 내용에서 다 낸거니까 찾아보실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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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도 순서대로 갑니다.

▶ 주몽

- 주몽은 고구려를 세운 인물로 '동명왕' 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 주몽은 부여로부터 내려와 고구려를 세웠습니다. 

 

▶ 태조왕

- 옥저를 정복합니다.

- 왕위 세습을 이어갑니다. 이 때는 왕위는 형제끼리 계승하는 형태였습니다. 

 

▶ 고국천왕

- 왕위를 이어갈 때, 부자 세습을 채택합니다.

- 진대법을 발표합니다.  진대법은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곡식으로 갚는다는 법입니다. 지금으로치면 은행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 5부족체제에서 행정5부로 개편하여 왕권 강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 고국천왕과 미천왕 사이에 위나라의 관구검이 쳐들어옵니다. ********* 

 

▶ 미천왕

- 낙랑군 축출

 

▶ 고국원왕

- 백제의 근초고왕에 의해 전사 (이 때는 4세기로 백제의 전성기입니다.)

 

▶ 소수림왕

- 개혁의 왕입니다. 율령을 제정했습니다. 율령이란 부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이 뜻은 뭐다?

- 불교를 수용했다! 이거죠.

- 태학을 설립합니다. 태학은 고구려의 교육 기관입니다.

 

▶ 광개토대왕

- 제일 유명한 고구려의 왕이죠? 영토를 확장하는데 엄청난 힘을 썼습니다. 이 때는 고구려의 전성기의 시작입니다. 광개토대왕은 보통 북진정책을 펼쳤습니다.

- 신라가 왜의 침략을 받자 신라의 요청을 받고  왜를 격퇴하러 내려갔었습니다. 

- 이 때, 신라로부터 '호우명그릇' 이란 것을 받게 됩니다. 

호우명그릇

- 신라의 요청을 받고 왜를 격퇴하는 과정에서 금관가야까지 칩니다. 금관가야는 고구려의 침략에 의해 쇠퇴하게 됩니다.  멸망한 것은 아닙니다!

 

▶ 장수왕

-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어간 왕입니다. 장수왕은 이전에 백제의 근초고왕에 의해 전사한 고국원왕의 복수,치욕을 갚기 위해 백제를 칩니다.  이 과정에서 백제는 한성을 내주게 되고  백제의 개로왕 역시 전사하게 됩니다. 

- 도읍을 평양으로 천도합니다.

- 중국과 교류를 열심히하며 균형외교를 펼칩니다.

- 충주 고구려비를 설립

- 장수왕의 백제 침략에 의해 백제와 신라는 나제동맹을 결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성을 내준 백제는 웅진으로 천도하게 됩니다. 

 

****** 장수왕 이후, 수나라의 침략이 있었고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을 통해 수를 격퇴시킵니다. ******

** 당의 침략을 막기 위해 천리장성을 축조합니다. 그리고 연개소문이 등장하게 됩니다. **

 

Tip. 살수대첩 → 천리장성 축조 → 당나라의 침략

 

▶ 642년 (중요한 연도입니다.)

- 642년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습니다. 같은 연도에 백제의 의자왕이 신라를 공격함으로써  신라의 선덕여왕은 김춘추를 고구려로 보내 도움을 요청합니다. 

- 연개소문은 신라의 도움을 거절하였고, 이에 신라는 당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렇게 나당 연합이 결성되었습니다. 

- 고구려는 당나라와 싸우게 되고 여기서 유명한 싸움이 안시성 전투가 되겠습니다.  

- 고구려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668년에 멸망하게 됩니다.

 

▶ 고구려 부흥 운동

- 검모잠, 안승, 고연무가 고구려 부흥 운동을 꾀했으나 실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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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

- 정치 : 왕의 독자적인 정치체제는 아닙니다. '사출도' 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개,말,소,돼지를 의미하며 왕 주변의 4개의 직위를 가진자들과 함께 통치를 하는 형태입니다. 함께 알아두면 좋은 용어로 5부족연맹체제가 있습니다.

 

* 이전 포스팅에서 말했지만  철기 시대 때는 연맹 왕국 사회의 특징을 띤다고 하였습니다. 부여가 그 예가 되죠. 

 

- 식 : 목축업이 발달했습니다. 부여는 넓은 평야를 영토로 하는 국가라 그렇습니다. 물론 목축업만 하는 것은 아니고

농업도 함께 합니다. 그래서 '반농반목' 형태라고 외워두면 좋습니다.

- 제사 : 이름은 '영고' 입니다.

- 풍습 : 순장, 1책12법이 있습니다.  

- 결혼 : 형사취수제

 

▶ 고구려

- 정치 : 고구려는 부여로부터 내려온 '주몽'이 세운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인 면이 부여와 많이 닮았습니다. 고구려 역시 5부족연맹체제이며  제가회의를 통해 통치를 해왔습니다.  

- 식 : 고구려는 약탈경제체제입니다. 주변의 동예와 옥저로부터 조공을 받아왔습니다.

- 제사 : 이름은 '동맹'입니다. 

- 풍습 : 1책 12법

- 결혼 : 형사취수제, 서옥제

형사취수제야 많이 유명하니 넘어가겠습니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한다는 결혼풍습이죠?

서옥제는 신부의 집안에서 '서옥' 이라는 집을 짓고 신랑이 서옥에 들어가 지내다 나중에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남자가 결혼한다고하면 '장가 갑니다!' 하게 된거죠.

 

▶ 옥저

- 정치 : 부여와 고구려는 국가의 모습을 띠고 있었으나, 옥저와 동예, 삼한(마,변,진)은 국가는 아니였습니다. 그저 부족들이 모인 연맹왕국체제였습니다.  따라서 왕은 없습니다. 대신 제사장 역할을 맡은 읍군과 삼로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 식 : 옥저는 지금으로치면 북한 동해안을 끼고 있던 연맹국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산물이 유명했고 이를 고구려에 일부 바치곤 했습니다.  + 소금도 유명했습니다.

- 제사 : X

- 풍습 : 가족공동묘

- 결혼 : 민며느리제  → 민며느리제는 서옥제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 동예

- 정치 : 옥저와 같으므로 생략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제사장(읍군,삼로)이 통치해왔습니다. 

- 식 : 옥저와 마찬가지로 동해안을 끼고 있었고  지금으로치면 강원도 쪽이였습니다. 이곳은 옛날에는 바다표범이 해안에 많이 살고있었습니다. 그래서  '반어피'라는 것이 특산품이였습니다. 어피는 바다표범가죽입니다.  그리고 '과하마' (=조랑말)도 유명했습니다.

- 제사 : 무천

- 풍습 : 책화

- 결혼 : 족외혼 

책화란 각 부족마다 경계선을 지정해놓고 이 선을 침범하면 노예를 보냄으로써 배상하는 풍습입니다. 

족외혼은 같은 부족이 아닌 다른 부족 사람과 결혼을 해야한다는 법입니다. 씨족 사회를 계승했습니다.

 

▶ 삼한 (마한,진한,변한)

- 정치 : 마찬가지로 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사장과 군장이 존재했습니다. 군장은 통치를 담당하고 제사장은 제사를 담당했습니다. 즉, '제정분리사회' 였습니다. 

- 식 : 벼농사

- 제사 : 계절제

- 풍습 : X

- 결혼 : X

 

삼한 중 변한이 철로 유명했습니다. 변한은 철을 일본으로도 수출하는등 무역이 활발이 이루어졌었습니다. 

 

자, 복습해봅시다. [Test]

1) 부여의 정치는 _________ , 개&돼지&말&소를 뜻하는 ________ 이다.  왕은 독자적인 권력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2) 부여의 제사 이름은? _______

3) 부여의 풍습 2가지는? _______ , ________

4) 부여는 농업과 함께 _______ 이 발달했다.

 

5) 고구려는 부여와 똑같이 5부족연맹체제였고 ______ 회의를 통해 통치했다.

6) 고구려 제사의 이름은? ________

7) 고구려의 경제체제는? ________

8) 고구려의 결혼특징은? _______ 와 _______

 

9) 옥저는 왕 대신 군장이 있었고 이름은 ______ , _______이다.

10) 옥저의 특산품으로는 ______ , ________가 있다.

11) 옥저의 풍습은? ___________ (Hint. 무덤)

12) 옥저의 결혼특징은? ________ 

 

13) 동예의 특산품은? _______ , ______ 가 있다.

14) 동예의 결혼특징은?

15) 동예의 풍습은? ______ 이고 이는 ____ 사회를 계승한 것이다.

 

16) 삼한은 어떤 정치체제였나? _________________

17) 삼한 중 철로 유명한 곳은 어디였는가? (마한/변한/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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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47회 한능검 (개정편) 1급을 준비하고 있는 Crush on Study입니다.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알기 쉽게, 재밌게 요약해서 포스팅하려합니다.  잘 읽어주세요!

 

구석기 시대에 대해서 [이동 생활]

- 구석기 시대는 동굴과 막집에서 생활했습니다.  적으세요. 당장 A4 들고와서!  구석기 시대는 동굴과 막집에서 생활.

- 그 다음으로, 주먹도끼(뗀석기)를 사용했습니다. 주먹도끼는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Keypoint!!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주먹도끼는 한국에서 발견되었고 그 위치는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입니다. 이거 시험에 자주 나옵니다.  그 밖에도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동굴에서 생활했다고 했는데 그 흔적이 잘 남아있는 곳 중 하나가  '공주 석장리' 입니다.             

-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수렵과 채집으로 옷과 음식을 해결했습니다. 

 

* Tip.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는 도중에 지구 전체에 기후의 변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에 맞춰 작고 날쌘 동물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슴베찌르개' 라는 도구를 사냥용으로 썼습니다.

 

자, 정리 한번 합시다. 

1)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디서 생활했나요? ______________ 

2)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_______ (뗀석기) 이용했고 기후에 변화가 생기자 __________ 를 사냥용으로 씁니다.

3) 주먹도끼가 발견된 곳은 경기도 ____________________ 입니다.

4)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_______ 에서 생활했고 이는 공주 _______ 에서 발견된게 대표적입니다.

 

신석기 시대에 대해서 [정착 생활]

-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이제 제대로 된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이름은 움집입니다. 이 움집은 구조가 꽤 신기합니다.

반지하구요. '패총'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패총 <출처 - 구글 이미지 by '경상남도 관광길잡이 홈페이지'>

이러한 형태인데 조개무덤이라는 의미입니다. 발견된 장소는 부산의 동삼동과 서울 암사동입니다.

- 신석기 시대때는 정착 생활이 이루어지면서 식을 해결하는 방법도 바뀌었습니다. 수렵과 채집은 여전하지만 이제 밭농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죠.  즉, 농경 사회의 시작이라 볼 수 있습니다.

- 추가로, 이 때는 뼈바늘&가락바퀴를 통해 옷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 애니미즘과 토테미즘, 샤머니즘과 같은 원시신앙이 등장하게 됩니다.

- 농경 사회가 시작되면서  석제 농기구를 사용하게 됩니다. 또,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써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었었습니다. 

 

자, 신석기 시대도 요약합시다.

1)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은 _____________ 토기 입니다.

2) 신석기 시대는 정착 생활을 시작했고 (움집 / 막집)에서 지내며 _______ 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조개무덤이라는 뜻입니다. 

3) 옷을 만들때 쓰인 도구는 ________ 입니다.

4) 샤머니즘, 토테미즘, 애니미즘과 같은 _________ 이 등장하였습니다. 

5) 수렵+채집+(       )를 시작하였습니다. (Tip. 이를 신석기 혁명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청동기 시대 [계급 사회]

- 청동기때부터는 계급 사회가 등장했습니다. 환웅이야기를 보면 계급 사회의 사상과 제사를 지낸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걸 빗대서 신화로 만들었다는 느낌이거든요.  아무튼 이 때부터는 전쟁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세워지게 됩니다.  연도는 워낙 외우기 쉬우니 적고 가겠습니다. B.C 2333년입니다.

하늘의 자손이라 칭한 단군조선이 세웁니다.

 

- 고조선은 비파형동검과 고인돌이 대표적인 유물입니다. 재밌는 사실은 전 세계의 절반에 해당하는 고인돌이 한국에 있다는 것입니다 ㅎㅎ  + 반달 돌칼 역시 청동기 시대의 유물입니다. 

- 청동기 시대 때 사용한 토기는 '민무늬 토기' 입니다. 

- 벼농사의 시작

- 청동기 시대에 세워진 국가 고조선은 제정일치 사회였습니다.

- 청동기 시대 때는 집은 움집이였으나 신석기 시대와 달리 지상 가옥 형태였습니다. 이 차이점만 염두해두시길 바랍니다. 배산임수의 형태를 취한 것으로보아 이 때부터 풍수지리의 중요성을 느낀것으로 생각됩니다.

 

+ 여기서 고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고조선은 크게 우리가 아는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으로 나뉩니다. 단군조선의 경우는  단군왕검과  우왕,준왕정도만 아시면 됩니다.  단군왕검은 뭐 고조선을 세운 '태조'라고 보면 되고, 우왕과 준왕 사이에서 체크할 것은  부자 세습에 의한 왕위 계승정도? 이 정도의 특징만 아시면 됩니다. 

 

++ 위만 조선에서 봐야할 것.  위만은 한나라와 중계무역을 하여 부를 축척한 왕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한무제의 침략에 의해 기원전 108년에 고조선은 멸망하게 되고,  고대 국가 시절로 들어가게 됩니다. 

 

+++ 고조선에서는 '8조법' 이라는게 있었습니다. 다 복원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죽인자는 사형]

[도둑질을 하다 걸린자는  노비가 되거나 50만전을 지불]

[해를 가한자는 곡식으로 갚아야한다]

이렇게 있었습니다. 보면 곡식이 부의 지표를 나타내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 삼한에 대한 이야긴데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지겠습니다.

 

▶ 철기 시대 [연맹 왕국]

- 철기 시대부터는 고대 국가 통치 시절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제가 얘기하겠지만 변한이 철로 많이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가야가 '덩이쇠'라는 것으로 부를 축적하곤 했죠.

- 철기 시대 때는 화폐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명도전' 

- 세형 동검 (한반도의 독자적인 유물)

- 철제 농기구를 통해 농경 사회의 효율성을 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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